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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유적지

우륵과 신립의 역사가 서린곳 충주 탄금대 (200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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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인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는

 조국의 멸망 후에 이 곳에 강제로 이주당한 수 많은 가야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당시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타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들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부락을 이루고 그곳을 탄금대라 명명했다.

 20년전에 갔던 이곳을 원주 가는길에 한번 들려 보기로 한다.

 

 

 

 

신립 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

 

 임진왜란 때 신립(1546∼1592) 장군이 왜적과 전투시

죽기를 결심하고 8,000여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 배수진을 친다.

신립장군은 활의 명수이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적군을 향하여 무수한 활을 쏘아대는 신립장군의 활이 열로 인하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자

 12번이나 절벽을 오르내리며 활에 물을 적시어 열을 식힌곳이라는 의미로 열두대라 부른다고 한다
신립장군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한을 품고 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열두대

 

 

 

 

열두대에서 본 남한강 풍경

 

 

 

 

 

 

 

남한강 상류 방향

 

 

 

 

충혼탑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충주 출신 전몰 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2838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것이다.

 

 

 

 

탄금정에서 내려다 본 탄금공원로

 

 

 

 

탄금공원 안에 있는 대흥사

 

 

 

 

 

 

 

조웅장군 기적비

 

탄금대는 명승 제42호로 충주시 칠금동에 위치한다.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우륵의 애절한 사연과 신립장군 충절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공원 군데군데에는 조각작품이 들어서 있고, 소나무 군락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단란한 가족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결혼전 아내와 함께 중간지점인 충주에서 만나 이곳에서 데이트 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볼 공간이 적어 이곳이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도시민의 쉼터로서 역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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