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문화,유적지

진천 환희산 정송강사 - 배티성지 (2021.11.27)

728x90

주말을 맞아 아내와 함께 진천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애마에 올라타 내리 달려 나간다.

목적지는 정송강사이고 조선시대 정치가이자 문인인 송강 정철의 영정을 봉안한

문백면 봉죽리에 소재한 사당(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이다.

 

 

정송강사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람한 나무가 객을 맞는데 진천 21호에 지정된 군 나무로

수고가 22m, 흉고 4.9m로 수령이 347년 된 느티나무로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다.

느티나무 뒤로는 환희산이 자리하고 있어 오늘 산행지이기도..

 

 

잎이 모두 떨어진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산행길에 나서기로 한다.(11:05)

 

 

느티나무 옆 송강 정철 묘소로 가는 들머리가 있고 산행 안내도가 있다.

 

 

오늘 산행할 환희산은 시계방향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기로 한다.

 

 

상산 8경은 진천군에 있는 8개소의 경승지이며 상산은 진천의 옛 이름이다.

① 평사낙안() ② 우담제월() ③ 금계완사() ④ 두타모종(鐘)

⑤ 상산모운() ⑥ 농암모설(籠) ⑦ 어은계석() ⑧ 적대청람()

문백면 어은계석()은 정철의 묘소가 있는 계곡의 자연 풍경이다.

 

 

다리를 건너며 다시 송강 정철 묘소 입구의 표시가 나타난다.

 

 

임도 같은 넓은 길에 가파른 경사구간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경사구간이 지나자 갈림길이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올라서자..

 

 

송강 정철의 묘소가 나타나며 묘소는 정철 선생(1536~1593)과 문화유씨를 합장한 곳이다.

손자(양)가 송시열과 상의하여 고양시 원당읍에 있는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였고

아래에는 유훈에 따라 둘째 아들(종명)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묘소 위쪽 잔디에는 절기에 맞지 않는 할미꽃이 꽃을 피우고 있다.

 

 

본격적인 산행길에 올라서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미끄럽다.

 

 

등로는 가파르게 이어지고 미끄러운 낙엽으로 인해 조심스럽다.

 

 

멋진 갑옷 문양의 소나무가 등로 옆에서 눈길을 끌기도 한다.

 

 

짧은 구간이지만 가파른 경사구간에서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고..

 

 

국사봉과 대동저수지로 빠지는 갈림길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정상 능선의 편안한 길을 걸으며 환희산 정상에 도착..(11:48)

정상석 옆에는 두 쌍의 부부가 요기를 하는 중이고 서둘러 자리를 옆으로 피해 주고 사진까지

찍어주는 친절을 베풀어준다. 환희산은 기쁨을 주는 산이라는 의미로 진천군 문백면과

천안시 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만뢰지맥이 지나는 산이다.

 

 

하산길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어 미끄럼 조심하며 내려선다.

 

 

산길 옆에는 멋진 소나무가 눈길을 끌며 카메라에 담아보기로..

 

 

빨갛게 익은 열매도 눈길을 유혹하기에 충분하기만 하다.

 

 

남아있는 단풍이 반겨주는 송강 정철 시비에 도착하며 둘러보기로 한다.

정송강사는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자리하며 조선의 정치가이며 문인인 송강 정철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76년 12월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의 건물은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 유물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삼문, 내삼문 두 개의 문을 지나 석조 계단을 올라 사당에 도착하게 된다.

 

 

사당은 목조 19평 맞배지붕이고 유물전시관은 시멘트 32평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송강 선생의 은배, 옥배, 연행 일기 65일 분과 친필 편지 등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홍살문과 신도비가 자리한 모습으로 신도비는 조선 현종 4년(1665)에 세워졌으며

신도비의 글은 문정공 송시열이 지었으며 오위도총부 부총관인 김수증이

전서하고 글씨를 썼으며 비는 거북 받침 위에 비문을 올렸다.

 

 

선생은 기대승, 김인후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명종 17년 진사시와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하였으며 강원도 관찰사로 등용된 후 전라도, 함경도 관찰사를 거쳤으며

관동별곡, 훈민가, 사미인곡 등 많은 가사와 단가를 지었다.

 

 

비각은 목조 기와집으로 단청이 된 팔작지붕이며 아래에는 느티나무가 자리한다..

 

 

느티나무는 청송강사의 유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매년 푸른 잎을 올린다.

 

 

정송강사를 팀방하고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무리..(12:27)

 

 

진천의 미답지 산을 산행하면서 환희산에 산 여행을 떠나는데 청송강사가 들머리가 된다.

청송강사의 뒷쪽의 산이 환희산으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게 되는 산행이다.

작은 산이라도 가파른 오르막의 경사는 다리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송강 정철의 유적지 순례를 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산행코스 : 정송강사 주차장-송강 정철 묘소-환희산 정상-정송강사-주차장

( 1시간 22분 / 2.8km )

 

 

청송강사에 있는 진천의 주요 관광지 표지판을 보니 대부분 다녀온 곳이었는데

배티성지를 다녀보지 못한 곳이라 애마에 배티성지를 입력한다.

 

 

배티성지는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송강사에서 30여분 소요되는

거리에 있으며 내비 양의 안내를 따라 문백면에서 백곡면으로 달려간다.

도로 옆에 자리한 주차장에 애마를 세우고 성당으로 향한다.

 

 

바이커들이 떠나고 그림 같은 성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다시 담아본다.

배티성지는 진천 백곡면 자리하고 있으며 2011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노고산 아래 배티성지는 많은 순교자의 종교 정신을 기리는 장소이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포장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니 멋진 소나무 숲이 보이고..

 

 

소나무 숲에 순교 현양비가 보이는데 천주교 박해시절 교인들을 압송할 때

교인을 돌기둥에 묶어 놓고 제 볼일을 보았다고 한다.

 

 

형구돌이라고 하며 천주교 박해기에 신자들의 교수형구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괴산 연풍지역에서 발견되어 배티 순교성지로 이전되었다 하는데

순교 현양비와 형구 틀은 끔찍한 도구이기도 하다.

 

 

최양업 신부 박물관은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사업으로 2012년 10월 10일에

기공식을 갖고 공사를 시작하여 2014년 4월 11일에 개관된 박물관이다.

 

 

초가지붕의 신학교를 찾던 중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아 마침 나와 있던

안내하는 분이 직선거리 200m 오른쪽 위쪽에 자리한다고 알려주어 찾아간다.

 

 

옛 성당 겸 신학교는 1850년 고 페레올(요한) 주교가 설립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자 성당 사제관으로, 1853년 여름부터는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이곳에 거처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2001년 12월 1일에

복원 봉헌되었으며 현재 초가지붕을 새로이 얹는 중..

 

 

최양업 신부의 가족으로 왼쪽에는 아버지인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로 서울 좌포도청에서

순교하였고 가운데는 최양업 신부가 사제수품 당시의 모습이고 오른쪽에는

어머니인 복려 이성례 마리아로 서울 당고개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옛 성당의 최양업 신부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최양업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부이자 두 번째 두 번째 사제이며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와

북만주에서 공부한 뒤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최양업은 1861년 6월 15일 영남지방에서 사목활동을 마치고 상경하다 장티푸스와

과로로 40세의 나이로 문경에서 선종하여 제천 배론에 안장되었다.

 

 

지도에서 배티성지의 순례길은 약 3.5km이고 둘레길은 약 7.5k로 두 구간으로 나있으며

배티라는 말은 동네 어귀의 고개에 배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아치라는

말을 순우리말인 배티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청송강사에서 환희산 산행을 한 후 백곡면에 자리한 배티성지에서 성지 탐방을 나서기로 한다.

첩첩산중의 산기슭에 자리한 배티성지에는 순례길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언젠가 다시 걸음해 보기로 하고 귀갓길에 진천 맛집인 곰가내에 들려

밥이 맛난 돌솥밥 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귀갓길을 잡는다.

 

 

 

728x90